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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끊으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오랜만에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들렀다. 감사하게도 화분도 하나 얻고, 책도 한권 추천받았다. 당연히 알코올과 관련된 책이겠거니 하고 감사히 빌려왔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책의 저자는 중독은 가장 절망적인 병 중 하나이지만 회복이 가능하고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책을 집필하였고, 나는 단주를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 책을 들었다.

간혹 대부업체와 관련된 신문기사나 뉴스를 볼 때가 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나 혹은 늘어나는 지출을 감당하지 못해 3금융권도 아닌 대부 업체에 돈을 빌리게 되고, 집도 차도 잃고 목숨까지 잃고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는 소식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물론 사업에 실패하거나 당장의 일자리를 잃어 어쩔 수 없이 빌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단지 늘어나는 소비와 사치를 감당하지 못해 여기저기 빌리다 보니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를 감당하지 못해 생기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이유에서든 지금 빌리는 돈은 내일부터 이자가 발생하기에, 원금을 갚기 위해서는 오늘의 소비를 조절해야 한다. 또한 신용등급 관리를 잘 못하다보면, 전에 빌렸던 돈만큼 빌리는 일도 어렵고 이자도 더 많아진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금융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대출이나 저축과 같이 돈과 관련된 정보에는 사람들이 매우 민감하다. 저금리 시대에 1%라도 더 싸거나 더 많이 주는 곳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술에 관한 문제에는 너무 관대한건 아닐까?

술을 마시면 세로토닌과 도파민이라는 뇌의 신경전달 물질이 일시적으로 증가한다. 하지만, 이러한 음주가 반복되면, 증가했던 신경전달 물질은 평소보다 더 떨어지게 된다. 이제 이전만큼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증가하려면 더 많은 알코올이 필요하다. 따라서 술을 마신다는 것은 내일의 행복을 오늘 빌려오는 것과 같다. 내일 아침 일어나면, 분명 어제보다 오늘 행복감을 느끼기 어렵다. 또한 무언가를 빌리면 이자를 내야 하듯 숙취와 심리적 허탈감이 밀려오게 된다. 게다가 이제 1병만으로는 전날만큼의 행복감을 주지 않는다. 2병, 3병, 4병... 자꾸 마셔야 전날만큼의 행복감을 준다. 아니 이제는 덜 불행한 기분을 느끼게 해줄 뿐이다. 문제는 다음날 내어야 할 이자는 점점 늘어난다. 숙취와 심리적 허탈감뿐만이 아니다. 다음날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된다. 금융 파산을 하듯이 생활 파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우선 ‘나의 상태에 대한 인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의 구렁텅이에 빠졌을 때 ‘나는 괜찮다. 이렇게 살다가 어떻게든 되겠지. 다들 이렇게 사는 거야. 지금부터 어느 정도 스스로 지출을 조절하면 문제가 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문제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이런 사람을 위한 제도가 바로 개인회생이다. 자신의 재무 상태를 낱낱이 알리고, 자신이 더 이상 빚을 내거나 갚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최소한의 소득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게 되고, 시간이 지나 나머지 채무를 면책 받을 수 있는 절차이다.

알코올 중독 치료의 시작도 ‘나는 술로 인한 문제로 술을 끊지 않으면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소비가 중독이 되면 적당히 소비하면서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태가 되듯이, 알코올 중독에 빠지면 적당히 술을 절주 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 냉정하게 이것을 인정해야한다. 그렇다면 빚을 다 갚은 것처럼 단주도 시간이 지나면 끝날까? 저자는 단주는 평생 함께 하는 것이라 말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채무를 다 면책 받고 나서 다시 예전과 같은 생활 방식을 유지하면 결국 시간이 문제이지 빚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술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정도 되었다라고 생각할 때가 다시 중독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빚을 갚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듯이, 사실 우리는 단주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왜 개인회생을 하는 사람이 빚을 갚을까? 빚을 갚는 것 자체가 삶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살기위한 것이 아닐까? 알코올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단주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목표가 되고, 3개월, 6개월, 1년 혹은 5년, 10년, 20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단주라는 목표를 이루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단주하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단주해야 한다. 저자는 우리의 지향점은 단주이면서도 단주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단주를 통해 나와 주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리기를 기대한다. 중독자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우리의 꿈은 단주 저 너머에 있다.

저자는 어느 정도 단주에 성공하면, 분명 다시 재발을 경고하는 증상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 증상은 술을 조절할 수 있다는 미련이 생기고, 스트레스가 늘어나고, 생활리듬이 깨지면서 나타난다. 또한 치료 계획을 지키지 못하고, 다시 중독자의 사고방식으로 돌아간다. 정서적으로 우울해지거나 불안해지고, 금단 증상과 갈망감이 증가한다. 또한 삶의 목표가 사라진다. 이럴 때 저자는 단주의 초심을 지키고, 스트레스 관리하고, 치료를 유지하고 치료 모임에 참여하라고 한다. 또한 안정된 삶을 유지하고, 인생의 목표를 기억하자고 말한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정말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혼자서 이루어 낼 수 있을까?

나는 심리학을 전공했고, 그 동안 학위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20대의 반복적인 알코올 문제를 다소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뜨거웠던 청춘의 얼룩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내 정신을 차리고 학업에 복귀했으며 좋은 성과를 이루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대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안일했던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의적이고 업무에 능동적이며, 가정에 충실하고 주변에 상냥하던 던 나는 술을 마시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변해버렸다. 처음 다짐했던 바와 달리 술을 조절하면서 마실 수도 없었다. 업무를 겨우 처리하다보니 제대로 일이 되지 않았고, 주변을 둘러볼 수 없었다. 혼자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아졌고, 다른 사람들과 술 마시는 자리가 끝난 후에도 혼술을 하며 폭음하게 되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좋았으나, 술을 마신 나는 엉망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나의 모습이 그렇게도 원망하던 술 마시고 난 뒤의 아버지를 닮았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생각이 유연했고, 똑똑했으며, 유머가 있으신 분이었다. 하지만 술은 그런 아버지를 망가트렸다. 결국 나는 술에 졌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정했다. 나의 할아버지는 술 때문에 단명하셨고, 큰아버지는 간경화로 일찍 떠나셨으며, 아버지는 힘들어 하셨고, 나 또한 술로 인해 패배감을 느꼈다. 무려 3대가 술로 인해 불행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나는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전화를 하고 지금까지도 관리를 받으면서 단주를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단주가 깨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한 잔을 마셔버렸으니 모든 것이 다 끝났어. 이왕 이렇게 된 것 원 없이 취해나 보자.’라고 생각하지 말자. 저자는 너무 섣부르게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술을 한 잔 마신 이후에도 여전히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라톤에서 실수로 넘어졌다면, 큰 실수이긴 하나 100m 달리기 보다는 치명적이지 않다. 넘어졌다는 이유로 완주를 포기하기엔 우리의 삶은 장기전이다. 절대 스스로 포기하지 말자. 나무 블록을 쌓다가 무너졌다고 엎어버리고 울고만 있는 건 3살짜리 아이나 할 법하다. 우리는 성인이지 않은가? 술을 마셨다는 건 큰 위기이지만, 마시게 된 과정을 찬찬히 복기하고, 내 삶의 목표와 단주의 이유를 곱씹어 보는 기회로 만들면 된다. 또한 저자는 치료 전반에 대한 점검을 해볼 것을 권한다.

나는 스스로의 통제력을 과신했고, 그것이 큰 실수였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등록하고 이 책을 읽게 되기까지, 단주 하는 삶은 그 자체로도 의미 있었고, 단주 너머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준 시간이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큰 실패를 하기 전 작은 실수들을 통해서도 그러한 시간을 빨리 가졌으면 한다.

술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면, 반드시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를 포함한 전문가를 찾아가 볼 것을 권한다. 단주의 초심을 지키고, 스트레스 관리하고, 치료를 유지하고 치료 모임에 참여하고, 안정된 삶을 유지하고, 인생의 목표를 기억하기 위한 긴 마라톤은 같이 뛸 동반자가 필요하다. 단주의 조력자를 얻기 위한 절차는 법적으로 복잡한 개인회생보다 절차가 더 간단하다. 술로 힘들어진 인생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서 상담을 시작해 보자. 저자의 말처럼 술을 끊으면 인생이 달리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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