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과거 술문제로 인해 인생의 바닥까지 가버린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일찍 술과 담배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른 나이에 친구들과 어울려 자주 술을 마시면서 술의 힘을 빌리면 왠지 자신감도 있어지는 것 같고 평소에는 못했던 말도 쉽게 부드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같아 쉽게 분위기에 휩쓸렸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음주습관의 시작이 되었고 술은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를 탈출시켜주었습니다. 친구들이 저보고 좀 술을 많이 마신다고는 했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잔소리로 들렸고 같이 술 좋아하는 친구나 후배끼리 어울렸습니다. 한번씩 술에 만취해서 집에 올 때면 어머니는 술을 그렇게 마신다면서 야단을 치시곤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알코올 중독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공부에 별 관심이 없어서 누나의 권유로 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바로 횟집과 일식집쪽으로 일을 하게 됐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집안을 도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음주습관도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늦게까지 마시니 다음날 지각을 하게 되고 무단결근으로 이어지면서 얼마가지 않아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가게로 취직을 해서도 나의 음주습관은 반복되어 계속 직장을 옮겨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가게에 가면 항상 냉장고에 술이 있었기에 일할 때에도 글라스잔에 부어 마시거나 주인 몰래 물 컵에 소주를 부어 마시는 등 중독자로 오해받고 싶지 않아 사람들 몰래 마시게 되었습니다. 퇴근해서 혼자 마시는 술은 소주잔에서 글라스 잔으로 변해갔습니다. 나중에 직장까지 팽개치고 중독자끼리 모여서 아침부터 마시고 식사를 거르고 20일까지 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깰만하면 마시고, 깰만하면 마시고, 만취해서 정신이 나가도 한참나간 나 자신은 나중엔 걸을 힘도 없고 몰골은 폐인이 되어있었습니다. 내 자신을 보며 왜 이렇게 됐나 자책하고 후회하고 미워하며 부정적인 생각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선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아직 난 할 일이 많은데 나이가 젊고 미래가 있는데 어머니는 나를 믿고 계시는데 하는 생각에 죽기 일보직전에는 항상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바로 그때가 되어서야 술잔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면 술을 끊는 동시에 금단증상이 옵니다. 헛것이 보이고 구역질 구토 악몽과 불면 불안 초조 우울감이 밀려왔지만 살려면 극심한 금단증상을 참아내야만 했습니다. 금단증상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 두려움 때문에 술을 못 끊은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술 마실 이유가 항상 많았습니다. 기분좋아서 한잔 기분나빠서 한잔, 좋은 안주보면 한잔, 일 마치면 한잔, 친구만나면 한잔, 비오는 날엔 막걸리 생각나서 한잔 그러면 술이 결국엔 숨어서 마시고 숨겨두고 마시고 낮 밤이 필요없었고 사람들에게 말 못할 일도 많았습니다. 술값이 없어서 집에 있는 돼지저금통을 뜯어서 술을 사 마신적도 있었고 가까운 마트에 가서 일부러 두터운 점퍼를 입고 소주 한 병으로는 적은 것 같아 양쪽 호주머니 각각 1병씩 그리고 안개비1병을 훔쳐서 마신적도 있습니다.
나 자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한번 발동걸리면 목숨을 바칠 정도로 먹었습니다. 몇 번을 단주결심을 했지만 술을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제어가 되지 않았고 결국 어머니의 입원치료권유를 받아들였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병원에 가지 않고 있다가는 폐인 아니면 죽음의 그림자 앞에 서야 했기에 나또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입원치료도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었습니다. 하루하루 지내는 병원생활에 단주치료라는 의미가 두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정해진 일과에 움직이는 것이었지만 몸에 쌓인 알코올을 빼며 사람을 살릴 수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치료 덕에 몸이 많이 좋아져 퇴원 후 6개월까지 단주를 해봤지만 이내 재발과 입원을 반복하며 한 7년간 병원 단골손님으로 정해져버렸습니다. 더욱이 병원에 있으면서도 내가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중독증에 걸려있는지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의 알코올 환자 대부분이 자기 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더군요. 나 또한 술만 안마시면 멀쩡한데 하고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 정신병원에 있어야만 하는지 반감도 많이 들었던게 사실입니다.
입퇴원을 반복하는 동안 어머니는 저를 위해 굿도 해보고 철학관을 찾는 등 많은 노력을 다 하셨지만 저는 늘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격리치료 중에 술 후유증으로 구토증상이 심하게 나타났고 목에서 피가 계속 올라와서 일반병실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위에 심한 상처가 생겨서 보름동안 밥 한 숟가락 먹지 못하고 링겔과 주사만 맞고 집으로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퇴원 3일도 되지 않아서 술을 입에 대고 있는 나를 어머니가 보시고 통곡을 하셨습니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면 어떨 때는 2~3일도 넘기지 못하고 재발하기도 여러 차례였으며 병원비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집안 형편은 계속 어려워지고 술병은 더 심해져 술을 숨겨두고 마시며 처참히 술의 노예가 되는 나의 모습에 나를 자학하고 술로서 괴로움을 달래면서 한번 술을 입에 댔다하면 맨 정신이기를 완전히 거부하고 술이라면 목숨을 거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최후의 선택은 병원밖에 없었습니다. 정신병원에 수차례 입원하면서도 지속된 음주는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고 그리고 내가 나를 바닥으로 내몰고 갔습니다.
옛날에 동네 아저씨 한분은 매일 구멍가게에서 소주 한 병을 글라스 잔에 부어 물처럼 원샷하고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무는 손을 달달달 떨면서 담배를 피는 모습을 봤을 땐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될까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내가 저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술 많이 마시는 분들은 경험하셨겠지만 술깨기 시작하면 손이 떨리고 다시 술이 들어가면 떨리지 않더라구요.
참 어머니 속을 많이 태웠습니다. 아마도 어머니처럼 중독자의 가족은 가슴에 시퍼렇게 멍이 들겁니다. 그렇다고 그런 이야기는 남한테 하소연도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알코올 중독은 가족병이라 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느날 지인의 소개로 알코올 상담센터라는 곳으로 소개받아서 가보았습니다. 정신병원하고는 많이 틀렸습니다. 센터직원들의 친절함과 함께 단주프로그램이 있어서 나 자신의 음주 문제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단주의 길로 열어준 것은 A.A. 모임이었고 선생님들의 경험담과 서로 건네는 도움의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센터는 저에게 단주를 향한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이제까지 나는 나 혼자의 힘으로 알코올 문제를 극복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센터에서 문산에 있는 정신병원으로 메시지 전달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단골환자로 있던 병원에 알코올환우들을 도우러 갈 수 있다는 것이 감회가 너무나 새로웠고 아직도 그 순간이 기억납니다. 그 메시지 전달이 나에게 단주를 향한 큰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합니다, 알코올 환우들을 도우러 간 것도 간 것이지만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A.A.모임에서는 술을 끊겠다는 열망만 있으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었기에 거기에서 단주의지와 힘을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년간 단주를 꾸준히 실천했지만 어떤 사고로 다시 재발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래도 단주를 2년정도 했으니 이젠 조절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이번엔 더 심해졌습니다. 25일정도 술만 마셨습니다. 집에서 술을 마시면 강제입원이 될 것 같아 처음 며칠은 숨어서 마셨습니다. 그러나 이내 돈도 없고 잘 곳이 없어 집으로 왔고 내일만 먹고 술을 안마시겠다고 다짐하고도 음주를 지속하여 저는 다시 입원치료를 받게 되었고 여러 힘든 과정 끝에 지금은 단주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선 이유는 나 자신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서입니다. 지금도 횟집에서 일하면 손님들이 술을 부어주곤 하는데 한 번씩 나를 깜박깜박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 센터 선생님의 또 나를 망각하고 잊어버리면 옛날로 돌아간다고 한 말씀이 인상깊었습니다. 일 때문에 자주 나오진 못하더라도 단주를 향한 마음을 되새기며 센터와 그리고 술을 끊겠다는 열망을 가진 모든 선생님들과 계속 같이 함께 가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게 내가 살길인 것 같습니다. 그전에 술을 마실 때에 가졌던 마음과 생각은 항상 나 스스로를 내가 만족하지 못하고 사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직장을 가진 것이 중요한 부분이 아닌 일할 수 있음에 만족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도 조금씩 세상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며 단주를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