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충청도 예산에서 태어나 어릴때 배가 고파 술찌꺼기로 3끼를 먹어가며 가난하게 살아왔습니다. 그 당시에는 알코올중독으로 될지도 모르고 그저 먹을 것이 없어서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습니다.
매일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다가 경찰서에 불려갔습니다. 술만 먹으면 폭력적으로 살고 내가 술을 먹고 왜 이럴까 후회하고 다시는 술을 안 마셔야지 하면서도 작심삼일로 되어버렸습니다.
계속 교도소를 3~4차례 갔다온 후 이제 술을 안 먹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한일병원 9층 정신과에 스스로 갔습니다. 하지만 낯선 환경에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척 답답했습니다.
3개월 후 제수씨가 와서 퇴원을 시켜주며 다시 술을 마시면 평생 입원시켜 안 빼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퇴원 후에도 술을 마시게 되었고 동네사람들이 동생한테 형이 술을 마시고 매일 행패부린다고 일러줬습니다. 그 말을 듣고 화가나서 다시 술을 마시고 아침에 깨었더니 모르는 사람들이 방문하여 정신과에서 왔다며 저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동생들을 무척 원망했습니다. 언제 퇴원하더라도 괘씸해서 반드시 너희들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존의 병원에서만 계속 지내는 것이 너무나도 답답하여 다른 병원에 입원시켜 달라하고 퇴원하여 사천의 정신병원에 다시 입원했습니다.
그 곳에서 2년동안 있는데 너무 답답한 마음에 추석에 외출을 나와서 병원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동네 친구들이 정신과 나왔다고 저를 피하고 멀리하고 같이 어울려 술을 안 마시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혼자 술을 마시고 고함을 지르고는 했습니다.
동네사람들이 저를 향해 “개만도 못하다” 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화가 나 참을 수 없어 문을 차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모든 것이 엉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술을 안 먹으면 잠이 안 오는데다가 손이 떨리기까지 했습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야 알코올 중독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술을 한 병만 마신다는 것이 늘 2병 3병이 되었는데도 이것을 깨닫지 못했고 회복하는 길이 있다는 것도 술을 안 마시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나이가 오십이 다 되어서야 깨달았습니다.
처음 퇴원할 때는 몸이 회복되어있으니 나도 모르게 딱 한 잔만 마셔야지 하다가 또 계속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결국 술에 취해 자괴감이 들어 내가 죽어야지 이렇게 살면 뭐하냐고 하면 어머니가 왜 그렇게 사느냐고 속상해하셨고 내가 “죽고 싶다”할 때마다 스스로 병원으로 가라고 타이르셨습니다.
정말 어머니의 애를 많이 태웠습니다. 어머니 속을 많이 썩였습니다. 술에 취해 흐트러지고 망가진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드렸기에 지금은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술을 끊고나니 참 후회스럽고 죄송스럽습니다.
어머니가 옆에서 저의 단주를 도와주고 계신가 싶을 정도로 저는 기적처럼 8년이 넘어도 술을 끊고 있습니다.
병원을 퇴원할 당시 저는 굳은 결심으로 단주를 위해 알코올상담센타를 찾아갔습니다 . 거기서 직원들이 친절하게 술 끊는데 도움을 준 덕분에 교육을 받고 A.A. 모임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돌이켜 생각을 해보니 알코올 중독은 치료가 필요한 큰 병이었습니다. 빨리 알지 못하고 더 심한 상황으로 이어졌던 것이 알코올 중독자로서 후회스럽고 술을 마시는 사람을 보면 참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여러분 술은 조절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일을 하는 중간 새참 시간에 일하는 사람들이 한잔해라 그러면 전 술을 못 먹습니다 하고 거절을 하곤 합니다 . 제가 영원히 회복의 길을 걷기로 다짐하며 단주를 시작하니 몸도 좋아지고 시커먼 얼굴이 환해지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너무나도 기쁩니다.
저는 회복의 길을 걷고 단주를 위해 매 순간을 노력합니다.
현재는 모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배우자를 만나 새로운 생활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좋습니다.
비록 단주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유지해나가는 지금은 너무나도 행복한 일상을 지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단주를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저의 경험을 통해 전달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