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 관련 다양한 정보와 모임등을 안내드립니다.
문○○씨
단주회복경험담
안녕하세요. 저는 과거 술문제로 인해 인생의 바닥까지 가버린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일찍 술과 담배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른 나이에 친구들과 어울려 자주 술을 마시면서 술의 힘을 빌리면 왠지 자신감도 있어지는 것 같고 평소에는 못했던 말도 쉽게 부드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같아 쉽게 분위기에 휩쓸렸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음주습관의 시작이 되었고 술은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를 탈출시켜주었습니다. 친구들이 저보고 좀 술을 많이 마신다고는 했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잔소리로 들렸고 같이 술 좋아하는 친구나 후배끼리 어울렸습니다. 한번씩 술에 만취해서 집에 올 때면 어머니는 술을 그렇게 마신다면서 야단을 치시곤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알코올 중독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공부에 별 관심이 없어서 누나의 권유로 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바로 횟집과 일식집쪽으로 일을 하게 됐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집안을 도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음주습관도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늦게까지 마시니 다음날 지각을 하게 되고 무단결근으로 이어지면서 얼마가지 않아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가게로 취직을 해서도 나의 음주습관은 반복되어 계속 직장을 옮겨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가게에 가면 항상 냉장고에 술이 있었기에 일할 때에도 글라스잔에 부어 마시거나 주인 몰래 물 컵에 소주를 부어 마시는 등 중독자로 오해받고 싶지 않아 사람들 몰래 마시게 되었습니다. 퇴근해서 혼자 마시는 술은 소주잔에서 글라스 잔으로 변해갔습니다. 나중에 직장까지 팽개치고 중독자끼리 모여서 아침부터 마시고 식사를 거르고 20일까지 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깰만하면 마시고, 깰만하면 마시고, 만취해서 정신이 나가도 한참나간 나 자신은 나중엔 걸을 힘도 없고 몰골은 폐인이 되어있었습니다. 내 자신을 보며 왜 이렇게 됐나 자책하고 후회하고 미워하며 부정적인 생각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선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아직 난 할 일이 많은데 나이가 젊고 미래가 있는데 어머니는 나를 믿고 계시는데 하는 생각에 죽기 일보직전에는 항상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바로 그때가 되어서야 술잔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면 술을 끊는 동시에 금단증상이 옵니다. 헛것이 보이고 구역질 구토 악몽과 불면 불안 초조 우울감이 밀려왔지만 살려면 극심한 금단증상을 참아내야만 했습니다. 금단증상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 두려움 때문에 술을 못 끊은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술 마실 이유가 항상 많았습니다. 기분좋아서 한잔 기분나빠서 한잔, 좋은 안주보면 한잔, 일 마치면 한잔, 친구만나면 한잔, 비오는 날엔 막걸리 생각나서 한잔 그러면 술이 결국엔 숨어서 마시고 숨겨두고 마시고 낮 밤이 필요없었고 사람들에게 말 못할 일도 많았습니다. 술값이 없어서 집에 있는 돼지저금통을 뜯어서 술을 사 마신적도 있었고 가까운 마트에 가서 일부러 두터운 점퍼를 입고 소주 한 병으로는 적은 것 같아 양쪽 호주머니 각각 1병씩 그리고 안개비1병을 훔쳐서 마신적도 있습니다.
나 자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한번 발동걸리면 목숨을 바칠 정도로 먹었습니다. 몇 번을 단주결심을 했지만 술을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제어가 되지 않았고 결국 어머니의 입원치료권유를 받아들였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병원에 가지 않고 있다가는 폐인 아니면 죽음의 그림자 앞에 서야 했기에 나또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입원치료도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었습니다. 하루하루 지내는 병원생활에 단주치료라는 의미가 두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정해진 일과에 움직이는 것이었지만 몸에 쌓인 알코올을 빼며 사람을 살릴 수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치료 덕에 몸이 많이 좋아져 퇴원 후 6개월까지 단주를 해봤지만 이내 재발과 입원을 반복하며 한 7년간 병원 단골손님으로 정해져버렸습니다. 더욱이 병원에 있으면서도 내가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중독증에 걸려있는지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의 알코올 환자 대부분이 자기 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더군요. 나 또한 술만 안마시면 멀쩡한데 하고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 정신병원에 있어야만 하는지 반감도 많이 들었던게 사실입니다.
입퇴원을 반복하는 동안 어머니는 저를 위해 굿도 해보고 철학관을 찾는 등 많은 노력을 다 하셨지만 저는 늘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격리치료 중에 술 후유증으로 구토증상이 심하게 나타났고 목에서 피가 계속 올라와서 일반병실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위에 심한 상처가 생겨서 보름동안 밥 한 숟가락 먹지 못하고 링겔과 주사만 맞고 집으로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퇴원 3일도 되지 않아서 술을 입에 대고 있는 나를 어머니가 보시고 통곡을 하셨습니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면 어떨 때는 2~3일도 넘기지 못하고 재발하기도 여러 차례였으며 병원비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집안 형편은 계속 어려워지고 술병은 더 심해져 술을 숨겨두고 마시며 처참히 술의 노예가 되는 나의 모습에 나를 자학하고 술로서 괴로움을 달래면서 한번 술을 입에 댔다하면 맨 정신이기를 완전히 거부하고 술이라면 목숨을 거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최후의 선택은 병원밖에 없었습니다. 정신병원에 수차례 입원하면서도 지속된 음주는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고 그리고 내가 나를 바닥으로 내몰고 갔습니다.
옛날에 동네 아저씨 한분은 매일 구멍가게에서 소주 한 병을 글라스 잔에 부어 물처럼 원샷하고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무는 손을 달달달 떨면서 담배를 피는 모습을 봤을 땐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될까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내가 저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술 많이 마시는 분들은 경험하셨겠지만 술깨기 시작하면 손이 떨리고 다시 술이 들어가면 떨리지 않더라구요.
참 어머니 속을 많이 태웠습니다. 아마도 어머니처럼 중독자의 가족은 가슴에 시퍼렇게 멍이 들겁니다. 그렇다고 그런 이야기는 남한테 하소연도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알코올 중독은 가족병이라 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느날 지인의 소개로 알코올 상담센터라는 곳으로 소개받아서 가보았습니다. 정신병원하고는 많이 틀렸습니다. 센터직원들의 친절함과 함께 단주프로그램이 있어서 나 자신의 음주 문제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단주의 길로 열어준 것은 A.A. 모임이었고 선생님들의 경험담과 서로 건네는 도움의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센터는 저에게 단주를 향한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이제까지 나는 나 혼자의 힘으로 알코올 문제를 극복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센터에서 문산에 있는 정신병원으로 메시지 전달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단골환자로 있던 병원에 알코올환우들을 도우러 갈 수 있다는 것이 감회가 너무나 새로웠고 아직도 그 순간이 기억납니다. 그 메시지 전달이 나에게 단주를 향한 큰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합니다, 알코올 환우들을 도우러 간 것도 간 것이지만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A.A.모임에서는 술을 끊겠다는 열망만 있으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었기에 거기에서 단주의지와 힘을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년간 단주를 꾸준히 실천했지만 어떤 사고로 다시 재발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래도 단주를 2년정도 했으니 이젠 조절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이번엔 더 심해졌습니다. 25일정도 술만 마셨습니다. 집에서 술을 마시면 강제입원이 될 것 같아 처음 며칠은 숨어서 마셨습니다. 그러나 이내 돈도 없고 잘 곳이 없어 집으로 왔고 내일만 먹고 술을 안마시겠다고 다짐하고도 음주를 지속하여 저는 다시 입원치료를 받게 되었고 여러 힘든 과정 끝에 지금은 단주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선 이유는 나 자신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서입니다. 지금도 횟집에서 일하면 손님들이 술을 부어주곤 하는데 한 번씩 나를 깜박깜박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 센터 선생님의 또 나를 망각하고 잊어버리면 옛날로 돌아간다고 한 말씀이 인상깊었습니다. 일 때문에 자주 나오진 못하더라도 단주를 향한 마음을 되새기며 센터와 그리고 술을 끊겠다는 열망을 가진 모든 선생님들과 계속 같이 함께 가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게 내가 살길인 것 같습니다. 그전에 술을 마실 때에 가졌던 마음과 생각은 항상 나 스스로를 내가 만족하지 못하고 사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직장을 가진 것이 중요한 부분이 아닌 일할 수 있음에 만족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도 조금씩 세상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며 단주를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씨
단주회복경험담
언제부터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습니다.
아마도 중학교 2학년 때인 걸로 기억됩니다. 학교를 마치기가 무섭게 우리들은 주막 2층 다락방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매일 모였습니다.
거기서 어김없이 막걸리 파티(소주도 곁들여)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면 항상 술이 취해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부모 형제들이야 그 심정이 오죽 미웠을까 싶지만 일찍이 7살 때 친구들과 화살 놀이를 하다가 눈의 시력을 잃고 살아온 나는 장애에 대한 원망으로 세상을 참 막 살아왔습니다.
부모 형제들도 아예 포기하고 간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부모님의 살뜰한 배려 덕분에 성적도 우수하였고 교우 관계도 원만하였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소위 주먹들과 어울리면서 날이 갈수록 나의 생활은 술에 젖은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왜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여자 친구를 사귀지 못할까? 생긴 것도 이만하면 괜찮은데라고 생각했습니다.
돌사진을 보면 두 눈이 초롱초롱한데 왜?......장애에 대한 원망은 날로 깊어만 갔습니다.
그래서 나날이 폭력을 휘두르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술에 취해서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부산 모 고등학교에 진학을 해서도 일찍이 시작한 술은 떨어지지 않고 거의 매일 나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학교는 퇴학을 당했고 일찍 시작한 술은 고등학교 2학년 때쯤 이미 깊은 중독이 시작된 걸로 생각됩니다.
술 때문에 어머니는 자식 하나 잃을 것 같아서인지 나를 부산의료원 정신과에 입원을 시켰고 그렇게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알코올은 나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여자친구가 임신을 하게 되었고 여자친구 집의 반대로 우리는 포항으로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생활을 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일찍 붙잡혀 버린 알코올의 마수에서 벗어 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나날이 계속되는 음주에 지친 여자친구가 결국 아이를 낳고 백일을 조금 넘었을 때 집을 나가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되는 비관과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전국을 거의 미쳐서 돌아다녔습니다. 술에 젖어 상심에 젖어......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지금 술을 끊고 새로운 생활을 하리라곤 꿈에도 생각을 할 수가 없었던 일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지독했던 술의 마수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운 좋게도 알코올 상담센터를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알코올 상담 센터를 만나면서 나는 단주모임(A.A.)을 만났고 단주모임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전의 나는 참으로 오만하였고 내가 누구인지조차도 모를 정도의 생활을 하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일찍이 시작한 술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 이미 나의 생활은 장애 때문에 시작된 폭력과 性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오로지 이기적인 나, 타성에 젖은 나에서 벗어 날 수가 없었던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도 단주모임을 만나면서 적어도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조금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알코올 상담센터에 감사드리고 단주모임 회원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생각해 보면 술을 끊는데 도움을 준 것은 단주모임을 하면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위로받고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간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한 때 죽으려고 자살 시도를 세 번씩이나 할 정도로 나의 생활은 술 때문에 피폐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술을 끊고 십년이라는 세월을 내년 8월이면 맞이합니다. 열다섯에 시작한 술 .담배와 함께한 시간들이 환갑을 눈앞에 둔 나로서 참 여러 가지 감회에 젖게 합니다. 같이 환갑을 맞는 아내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술로 인해서 많이도 모질게 대하였던 것을 참회의 눈물로 사과드립니다.
참! 험난했던 인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감히 말씀을 드릴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술의 악습에서 벗어 날 때 나를 생각할 수가 있고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비로소 조금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나만의 생각일까 싶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여러분의 말씀이 들린다는 것 입니다. 그러니 어쩌면 이제 겨우 듣기가 시작된 돌배기일 것이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중국어로 따지아 하오)
여러분 사랑합니다.
김○○씨
단주회복경험담
저는 충청도 예산에서 태어나 어릴때 배가 고파 술찌꺼기로 3끼를 먹어가며 가난하게 살아왔습니다. 그 당시에는 알코올중독으로 될지도 모르고 그저 먹을 것이 없어서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습니다.
매일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다가 경찰서에 불려갔습니다. 술만 먹으면 폭력적으로 살고 내가 술을 먹고 왜 이럴까 후회하고 다시는 술을 안 마셔야지 하면서도 작심삼일로 되어버렸습니다.
계속 교도소를 3~4차례 갔다온 후 이제 술을 안 먹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한일병원 9층 정신과에 스스로 갔습니다. 하지만 낯선 환경에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척 답답했습니다.
3개월 후 제수씨가 와서 퇴원을 시켜주며 다시 술을 마시면 평생 입원시켜 안 빼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퇴원 후에도 술을 마시게 되었고 동네사람들이 동생한테 형이 술을 마시고 매일 행패부린다고 일러줬습니다. 그 말을 듣고 화가나서 다시 술을 마시고 아침에 깨었더니 모르는 사람들이 방문하여 정신과에서 왔다며 저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동생들을 무척 원망했습니다. 언제 퇴원하더라도 괘씸해서 반드시 너희들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존의 병원에서만 계속 지내는 것이 너무나도 답답하여 다른 병원에 입원시켜 달라하고 퇴원하여 사천의 정신병원에 다시 입원했습니다.
그 곳에서 2년동안 있는데 너무 답답한 마음에 추석에 외출을 나와서 병원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동네 친구들이 정신과 나왔다고 저를 피하고 멀리하고 같이 어울려 술을 안 마시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혼자 술을 마시고 고함을 지르고는 했습니다.
동네사람들이 저를 향해 “개만도 못하다” 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화가 나 참을 수 없어 문을 차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모든 것이 엉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술을 안 먹으면 잠이 안 오는데다가 손이 떨리기까지 했습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야 알코올 중독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술을 한 병만 마신다는 것이 늘 2병 3병이 되었는데도 이것을 깨닫지 못했고 회복하는 길이 있다는 것도 술을 안 마시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나이가 오십이 다 되어서야 깨달았습니다.
처음 퇴원할 때는 몸이 회복되어있으니 나도 모르게 딱 한 잔만 마셔야지 하다가 또 계속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결국 술에 취해 자괴감이 들어 내가 죽어야지 이렇게 살면 뭐하냐고 하면 어머니가 왜 그렇게 사느냐고 속상해하셨고 내가 “죽고 싶다”할 때마다 스스로 병원으로 가라고 타이르셨습니다.
정말 어머니의 애를 많이 태웠습니다. 어머니 속을 많이 썩였습니다. 술에 취해 흐트러지고 망가진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드렸기에 지금은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술을 끊고나니 참 후회스럽고 죄송스럽습니다.
어머니가 옆에서 저의 단주를 도와주고 계신가 싶을 정도로 저는 기적처럼 8년이 넘어도 술을 끊고 있습니다.
병원을 퇴원할 당시 저는 굳은 결심으로 단주를 위해 알코올상담센타를 찾아갔습니다 . 거기서 직원들이 친절하게 술 끊는데 도움을 준 덕분에 교육을 받고 A.A. 모임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돌이켜 생각을 해보니 알코올 중독은 치료가 필요한 큰 병이었습니다. 빨리 알지 못하고 더 심한 상황으로 이어졌던 것이 알코올 중독자로서 후회스럽고 술을 마시는 사람을 보면 참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여러분 술은 조절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일을 하는 중간 새참 시간에 일하는 사람들이 한잔해라 그러면 전 술을 못 먹습니다 하고 거절을 하곤 합니다 . 제가 영원히 회복의 길을 걷기로 다짐하며 단주를 시작하니 몸도 좋아지고 시커먼 얼굴이 환해지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너무나도 기쁩니다.
저는 회복의 길을 걷고 단주를 위해 매 순간을 노력합니다.
현재는 모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배우자를 만나 새로운 생활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좋습니다.
비록 단주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유지해나가는 지금은 너무나도 행복한 일상을 지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단주를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저의 경험을 통해 전달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씨
나의 초주(初酒),학주(學酒),독주(毒酒),단주(斷酒)생활 돌아보기
1. 첫술(초주)에 대한 기억과 의미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우리나라 속담은 술과는 관련 없는 속담이지만 저의 음주생활과 비슷하고 또한 숟가락을 의미하는 첫술과 처음 마시는 첫술과 음이 비슷하여 오랜만에 이야기 해봅니다.
원래 뜻은 어떤 일을 처음 시작 할 때 조급하게 결과를 기다리지 말고 천천히, 꾸준히 하다보면 마지막에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의미인데, 술은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다가도 점차 계속 꾸준히 먹으면 마지막에 아주 안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저의 첫술은 어떤 것인가?
기억하는 시간의 순서상으로는 아마도 어릴 적에 아버지 막걸리 심부름하면서 몰래 마신 달디 단 주전자 막걸리이겠지만 또 다른 기억 속의 어릴 적 첫술 등은 부엌 위 선반에 있던 유리 댓병 소주의 달콤한 알콜 냄새, 초등학교 졸업 때 마신 환타와 막걸리, 중등시절 촌에 있는 친구동네 막걸리 집에 술 사러 가다가 다리에 부딪힌 일, 진주에서 보낸 고등시절 하숙집에서 생일파티 때 마시던 샴페인, 고3마지막 시기 때 처음으로 대취하여 벌린 사건 등이 첫술에 대한 기억으로 남게 됩니다.
2. 학주(學酒)시절 둘러 보기
본격적인 사회생활과 음주생활의 시작으로 들어가기 전에 예전에 술 마실 때 사용하였던 여러 가지 술에 대한 명칭부터 몇가지 적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회사 등에 입사 신고한다고 신고주, 이사한다고 이사주 이사 간다고 이별주, 서운타고 섭섭주, 집에 이사 왔다고 입택주, 옷 샀다고 착복주, 신발 샀다고 착화주, 비 온다고 촉촉주, 눈 온다고 백설주, 무언가 일이 있을 때 쏙닥주, 때론 아무 일이 없을 때도 심심주, 음주 막판에는 자다가 일어나서 기상주등 시도, 때도 없이 술을 마시기 위한 잔머리의 잔치를 벌이기도 하였지요.
진주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의 경제사정으로 가지 못한 대학교에 대한 미련이 술과 함께 변질되어 불만과 우울적인 생활과 겹치면서 친구들과 만나면 그냥 음료수를 마시던지 맨 정신에 이야기해도 될 사항을 개똥철학에 쓴 깡소주를 곁들였고 혼자서도 포도주를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사회에 대한 막연한 분노와 우울증에 처음 배우게 된 흡연과 음주생활은 가히 질풍노도와 같은 문제성 음주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3. 독주(毒酒)생활 - 문제성 음주의 시작과 지속
갓 스무살에 시작된 먼 객지에서의 직장생활 속에 이제 직장인이요, 이제 어른이랍시고 그렇게 가고 싶던 유흥주점에 고참 직원들과의 자유로운 음주 그리고 방탕....
체력이 뒷받침되던 젊은 시절이었기에 남들보다 술도 잘 마시고 일도 잘 한다는 소리도 들어가면서 빠른 진급에 계속된 음주생활은 술값, 술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경제적인 문제(빚보증), 신체적 정신적 건강, 직장생활 및 업무, 인간관계 등에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술도 못 마시고, 아니 마셔서는 안 되고 일도 못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하나의 술주정뱅이 인간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근 20년간의 시간 동안에.. 여러 가지들이 직장과 가정과 사회생활에서 아주 안 좋게 변화되었습니다.
4.단주(斷酒)생활 속으로 출발
종착역으로 달리던 기차처럼 끝없는 추락의 음주생활은 어리석게도 삶을 마감하고자 투신한 사건에서 그래도 저를 아껴주신, 제가 이해하게 된 신께서 보호해 주셔서 다시 살아나게 되고 진주 경상대학병원에서 시작된 단주치료가 경기도 광주세브란스병원까지 가서야 A.A(익명의 알콜중독자 단주모임)를 제 인생 안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2001년도에 진주성 옆 진주보건소에서 최선생님과 단 둘이서 시작된 단주모임... 제 단주역사의 시작이요 단주 에너지의 원천이었습니다.
그 뒤에 찿아 오신 김선생님과의 3인 A.A도 좋은 추억입니다.
사모님 잘 계시지요? 그때 참 애 많이 태우셨지요~~~
그러나 A.A가 없는 지역인 하동에서의 삶, 잦은 인사이동, 약한 단주 정신과 생활태도는 먼 거리의 단주모임, 업무상 바쁘다는 핑계로 이어져 재발도 두어번 발생하기도 하였지만 그때마다 진주알콜상담센터 초기 원년 발족멤버셨던 조, 김, 강선생님들께 조언도 구하고 하면서 단주의 길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리하여 알콜중독자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배고픔, 화남, 고독감, 피곤함을 피해야함) 단주생활을 알게 되었고 또 스스로 지키기 위하여, 정말 천운으로 이어진 27년의 직장생활을 명예퇴직하고 시작된 전남지역에서의 귀촌 및 단주전도(?)생활 속에서 평온한 단주활동을 지속하고 있지만 그래도 일상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단주모임과 기도 생활로 마음 안으로 정리하면서 열심히 단주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항상 저희들을 위하여 수고 하시는 진주중독관리센터장님 외 선생님과 우리 알콜 동지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단주생활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씨
술을 끊으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오랜만에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들렀다. 감사하게도 화분도 하나 얻고, 책도 한권 추천받았다. 당연히 알코올과 관련된 책이겠거니 하고 감사히 빌려왔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책의 저자는 중독은 가장 절망적인 병 중 하나이지만 회복이 가능하고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책을 집필하였고, 나는 단주를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 책을 들었다.
간혹 대부업체와 관련된 신문기사나 뉴스를 볼 때가 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나 혹은 늘어나는 지출을 감당하지 못해 3금융권도 아닌 대부 업체에 돈을 빌리게 되고, 집도 차도 잃고 목숨까지 잃고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는 소식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물론 사업에 실패하거나 당장의 일자리를 잃어 어쩔 수 없이 빌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단지 늘어나는 소비와 사치를 감당하지 못해 여기저기 빌리다 보니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를 감당하지 못해 생기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이유에서든 지금 빌리는 돈은 내일부터 이자가 발생하기에, 원금을 갚기 위해서는 오늘의 소비를 조절해야 한다. 또한 신용등급 관리를 잘 못하다보면, 전에 빌렸던 돈만큼 빌리는 일도 어렵고 이자도 더 많아진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금융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대출이나 저축과 같이 돈과 관련된 정보에는 사람들이 매우 민감하다. 저금리 시대에 1%라도 더 싸거나 더 많이 주는 곳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술에 관한 문제에는 너무 관대한건 아닐까?
술을 마시면 세로토닌과 도파민이라는 뇌의 신경전달 물질이 일시적으로 증가한다. 하지만, 이러한 음주가 반복되면, 증가했던 신경전달 물질은 평소보다 더 떨어지게 된다. 이제 이전만큼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증가하려면 더 많은 알코올이 필요하다. 따라서 술을 마신다는 것은 내일의 행복을 오늘 빌려오는 것과 같다. 내일 아침 일어나면, 분명 어제보다 오늘 행복감을 느끼기 어렵다. 또한 무언가를 빌리면 이자를 내야 하듯 숙취와 심리적 허탈감이 밀려오게 된다. 게다가 이제 1병만으로는 전날만큼의 행복감을 주지 않는다. 2병, 3병, 4병... 자꾸 마셔야 전날만큼의 행복감을 준다. 아니 이제는 덜 불행한 기분을 느끼게 해줄 뿐이다. 문제는 다음날 내어야 할 이자는 점점 늘어난다. 숙취와 심리적 허탈감뿐만이 아니다. 다음날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된다. 금융 파산을 하듯이 생활 파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우선 ‘나의 상태에 대한 인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의 구렁텅이에 빠졌을 때 ‘나는 괜찮다. 이렇게 살다가 어떻게든 되겠지. 다들 이렇게 사는 거야. 지금부터 어느 정도 스스로 지출을 조절하면 문제가 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문제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이런 사람을 위한 제도가 바로 개인회생이다. 자신의 재무 상태를 낱낱이 알리고, 자신이 더 이상 빚을 내거나 갚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최소한의 소득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게 되고, 시간이 지나 나머지 채무를 면책 받을 수 있는 절차이다.
알코올 중독 치료의 시작도 ‘나는 술로 인한 문제로 술을 끊지 않으면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소비가 중독이 되면 적당히 소비하면서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태가 되듯이, 알코올 중독에 빠지면 적당히 술을 절주 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 냉정하게 이것을 인정해야한다. 그렇다면 빚을 다 갚은 것처럼 단주도 시간이 지나면 끝날까? 저자는 단주는 평생 함께 하는 것이라 말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채무를 다 면책 받고 나서 다시 예전과 같은 생활 방식을 유지하면 결국 시간이 문제이지 빚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술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정도 되었다라고 생각할 때가 다시 중독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빚을 갚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듯이, 사실 우리는 단주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왜 개인회생을 하는 사람이 빚을 갚을까? 빚을 갚는 것 자체가 삶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살기위한 것이 아닐까? 알코올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단주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목표가 되고, 3개월, 6개월, 1년 혹은 5년, 10년, 20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단주라는 목표를 이루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단주하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단주해야 한다. 저자는 우리의 지향점은 단주이면서도 단주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단주를 통해 나와 주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리기를 기대한다. 중독자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우리의 꿈은 단주 저 너머에 있다.
저자는 어느 정도 단주에 성공하면, 분명 다시 재발을 경고하는 증상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 증상은 술을 조절할 수 있다는 미련이 생기고, 스트레스가 늘어나고, 생활리듬이 깨지면서 나타난다. 또한 치료 계획을 지키지 못하고, 다시 중독자의 사고방식으로 돌아간다. 정서적으로 우울해지거나 불안해지고, 금단 증상과 갈망감이 증가한다. 또한 삶의 목표가 사라진다. 이럴 때 저자는 단주의 초심을 지키고, 스트레스 관리하고, 치료를 유지하고 치료 모임에 참여하라고 한다. 또한 안정된 삶을 유지하고, 인생의 목표를 기억하자고 말한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정말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혼자서 이루어 낼 수 있을까?
나는 심리학을 전공했고, 그 동안 학위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20대의 반복적인 알코올 문제를 다소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뜨거웠던 청춘의 얼룩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내 정신을 차리고 학업에 복귀했으며 좋은 성과를 이루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대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안일했던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의적이고 업무에 능동적이며, 가정에 충실하고 주변에 상냥하던 던 나는 술을 마시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변해버렸다. 처음 다짐했던 바와 달리 술을 조절하면서 마실 수도 없었다. 업무를 겨우 처리하다보니 제대로 일이 되지 않았고, 주변을 둘러볼 수 없었다. 혼자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아졌고, 다른 사람들과 술 마시는 자리가 끝난 후에도 혼술을 하며 폭음하게 되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좋았으나, 술을 마신 나는 엉망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나의 모습이 그렇게도 원망하던 술 마시고 난 뒤의 아버지를 닮았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생각이 유연했고, 똑똑했으며, 유머가 있으신 분이었다. 하지만 술은 그런 아버지를 망가트렸다. 결국 나는 술에 졌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정했다. 나의 할아버지는 술 때문에 단명하셨고, 큰아버지는 간경화로 일찍 떠나셨으며, 아버지는 힘들어 하셨고, 나 또한 술로 인해 패배감을 느꼈다. 무려 3대가 술로 인해 불행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나는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전화를 하고 지금까지도 관리를 받으면서 단주를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단주가 깨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한 잔을 마셔버렸으니 모든 것이 다 끝났어. 이왕 이렇게 된 것 원 없이 취해나 보자.’라고 생각하지 말자. 저자는 너무 섣부르게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술을 한 잔 마신 이후에도 여전히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라톤에서 실수로 넘어졌다면, 큰 실수이긴 하나 100m 달리기 보다는 치명적이지 않다. 넘어졌다는 이유로 완주를 포기하기엔 우리의 삶은 장기전이다. 절대 스스로 포기하지 말자. 나무 블록을 쌓다가 무너졌다고 엎어버리고 울고만 있는 건 3살짜리 아이나 할 법하다. 우리는 성인이지 않은가? 술을 마셨다는 건 큰 위기이지만, 마시게 된 과정을 찬찬히 복기하고, 내 삶의 목표와 단주의 이유를 곱씹어 보는 기회로 만들면 된다. 또한 저자는 치료 전반에 대한 점검을 해볼 것을 권한다.
나는 스스로의 통제력을 과신했고, 그것이 큰 실수였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등록하고 이 책을 읽게 되기까지, 단주 하는 삶은 그 자체로도 의미 있었고, 단주 너머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준 시간이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큰 실패를 하기 전 작은 실수들을 통해서도 그러한 시간을 빨리 가졌으면 한다.
술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면, 반드시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를 포함한 전문가를 찾아가 볼 것을 권한다. 단주의 초심을 지키고, 스트레스 관리하고, 치료를 유지하고 치료 모임에 참여하고, 안정된 삶을 유지하고, 인생의 목표를 기억하기 위한 긴 마라톤은 같이 뛸 동반자가 필요하다. 단주의 조력자를 얻기 위한 절차는 법적으로 복잡한 개인회생보다 절차가 더 간단하다. 술로 힘들어진 인생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서 상담을 시작해 보자. 저자의 말처럼 술을 끊으면 인생이 달리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