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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마약 중독은 다리 부러진 것과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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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9-27 10:37 조회7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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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증하는 마약사범 대책

검거 처벌만 하면 몇 년 뒤 원상복귀… 병원, 쥐꼬리 예산 지원에 치료 포기마약교육 통해 아예 손 안 대게 해야… 치료 인력, 인프라 구축 로드맵 필요

《최근 경찰관 추락사를 불러온 ‘용산 집단 마약 파티’에 모인 사람이 25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의사, 대기업 직원, 헬스 트레이너 등 다양한 직업군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밤새 마약 파티를 연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 마약이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지 알 수 있다.


인구 10만 명당 마약류 사범의 수가 ‘마약지수’다. 이 지수가 20이 넘으면 마약 통제가 어려운 사회로 꼽는다. 우리 인구 대비 마약지수 20은 1만 명이다. 이 수치는 2015년 넘었다. 지난해엔 1만8000여 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1만 명을 웃돌아 2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통 상습 투약자를 검거된 사범의 20∼30배로 추정하는 공식에 따르면 이미 경북 포항시 인구 규모인 50만 명 안팎이 상습 투약자인 셈이다.》

● 마약, 의지만으론 극복 안 돼


마약은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온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히로뽕의 경우 뇌에서 엔도르핀, 도파민을 다량 분출시켜 절정의 쾌락을 맛보게 한다. 성관계 시 나오는 양보다 최소 10배 이상 많이 나온다고 한다. 이를 뇌가 기억한다. 그러면 평범한 일상의 즐거움은 더 이상 즐겁지 않다. 그 맛을 다시 보기 위해선 히로뽕에 손대야 한다. 하지만 엔도르핀 등의 생산량은 한계가 있어 갈수록 쾌락의 지속 시간이 짧아지고 투약량은 늘어난다. 본인의 의지를 넘어서 몸의 반응을 억제할 수 없는 단계가 되는 것이다. 이 중독 과정에서 뇌는 큰 손상을 입는다. 다리가 부러진 것과 같아서 단순 의지만으로 약을 끊을 수 없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마약 청정국의 지위를 다시 찾자며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마약의 경우 검거와 처벌만으론 확산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과거 사례에서도 입증된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 2002년 월드컵을 앞둔 특별단속 등으로 마약 사범을 소탕했으나 2∼3년 뒤 원상 복귀됐다.

최근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라는 책을 쓴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장은 “마약 사범 중 판매 유통범은 강력하게 처벌하되 투약범은 치료를 위주로 하는 것이 마약 방지에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보통 초범은 집행유예가 나오는데 이때 방치되면 재범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약 재범률은 보통 40% 정도로 범죄 중에서 가장 높다. 올 상반기에는 51%까지 치솟았다. 특히 마약 사범끼리 수감된 감방에서 새로운 마약 제조법과 유통법 등을 배워 출소한 뒤 더 중한 마약 사범이 되는 경우도 있는 만큼 치료 위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 뇌 손상 심해 마약 치료 특히 어려워

처벌보단 치료가 더 필요하지만 마약 치료는 중독이나 정신질환 치료 중 가장 어렵다. 의학계에선 조현병, 알코올의존증, 성격장애, 마약 중독 순으로 치료가 어렵다고 한다. 뇌의 손상이 여타 중독이나 질환보다 심해 공격성과 폭력성이 매우 강해지기 때문이다.

마약 중독자의 치료는 해독과 재활의 두 단계로 나눈다. 우선 병원에서 혈중 마약 농도를 줄이기 위해 다량의 수액을 놓고 피해망상, 환각 등의 흥분 상태를 가라앉힐 신경제를 처방한다. 이런 입원 치료를 1∼3주 받으면 중독에서 비롯된 증상이 드라마틱하게 사라진다. 다음으론 가정이나 지역사회로 돌아가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정기적 약물 검사와 상담을 통해 약을 끊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해독부터 어렵다. 전국 21개 병원이 ‘마약류 중독자 치료병원’으로 지정돼 있고, 치료비 역시 국가와 지자체가 최대 1년간 내준다. 시스템은 잘 갖춰진 셈이다. 하지만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는다. 치료 지원 예산은 올해 정부와 지자체 합쳐 8억2000만 원에 불과하다. 정부 예산 4억1000만 원은 상반기에 90% 이상 집행됐다. 지자체는 예산 부족으로 아예 병원에 돈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 보니 병원은 계속 적자가 나는 치료를 할 수 없게 된다. 현재 21곳 중 인천참사랑병원과 국립부곡병원을 빼고는 사실상 치료를 하지 않는다. 법원의 치료감호 역시 지난해 18명밖에 안 될 정도로 유명무실하다. 지난해 마약류 사범 수와 비교하면 대부분 방치된 것이다.

두 번째 재활 단계는 더 어렵다. 중독자의 상당수는 가정과 직장에서 외면당해 함께할 사람도 없고 돈도 없다. 이런 상황에 방치되면 극심한 스트레스로 마약에 다시 손을 대거나 돈을 벌기 위해 마약 판매상으로 나서거나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공동체 생활을 통해 단약 의지 및 일상 회복을 돕는 ‘다르크’가 80여 곳 운영돼 연 2000여 명이 거쳐 간다. 하지만 국내에선 혐오 시설로 꼽혀 마약퇴치운동본부조차 제대로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성교육 하듯 마약 교육 중요

“마약 중독 환자인 40대 남성이 제 앞에서 펑펑 울면서 ‘마약이 나쁘다고만 들었지, 지옥 같은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약을 안 했을 겁니다’라고 말하더라고요.”

마약 치료 전문 병원인 인천참사랑병원 천영훈 원장이 치료만큼 사전 예방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언급할 때 드는 사례다. 일각에선 마약 교육을 하면 오히려 마약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하지만 마약 교육은 과거 터부시됐다가 이젠 당연해진 성교육과 같이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릴수록 재범 위험이 높고 뇌 손상도 심한 만큼 10, 20대에 대한 예방 교육은 더 절실하다. 촉법소년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마약을 구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현재 학생들의 5%만이 마약 교육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학생을 비롯해 연간 205만 명에게 교육을 할 계획이지만 교재나 가르칠 인력 등이 확보되지 않아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 의료용 마약 과다 처방 규제 시급

최근 문제가 되는 의료용 마약의 과다·중복 처방에 대한 감시와 규제도 시급하다. 의료용 마약은 진통제, 수면제, 신경안정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용 약, 다이어트 약 등으로 의사 처방 아래서만 쓸 수 있다. 하지만 이 약들을 오·남용할 경우 쉽게 중독에 빠진다. 최근 운전하다 인도로 돌진해 20대 여성을 뇌사 상태로 빠뜨린 이른바 ‘롤스로이스 남’ 역시 여러 종류의 의료용 마약 성분이 몸에서 검출됐다.

대구의 한 다이어트 전문 병원은 지난해 환자 3만1000명에게 2216만 개 마약류를 처방했다. 1인당 평균 700개가량의 수치다. 또 30대 남성은 한 병원에서 245차례에 걸쳐 18만2000개의 마약류를 처방받았다. 한 차례당 700개의 약을 받은 셈이다.

의사의 셀프 마약류 처방 역시 심각하다. 지난해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인 옥시코돈을 16만 개나 본인에게 처방한 의사가 적발됐으나 팔거나 양도하지 않고 직접 복용했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처분에 그쳤다.

의료용 마약의 과다 처방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탤런트 유아인도 프로포폴을 과다 처방받은 이력 때문에 적발됐다. 이 시스템을 통해 정기적으로 의료용 마약 처방 실태를 확인해 과다·중복 처방을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통합 컨트롤타워도 필요

정부는 최근 마약 관련 내년 범정부 예산을 올해 대비 2.5배 올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시급한 중독자 치료비 지원은 동결돼 엇박자가 났다. 마약과의 전쟁은 공급을 줄이는 강력한 단속과 처벌, 수요를 줄이는 치료와 재활, 마약을 손대지 않게 하는 예방 등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국무총리실이 관련 부처를 모아 마약대책협의회를 운영하지만 부처 간의 미시적 조정에 그칠 뿐이다.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겠다면 마약류 관리를 통합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또 처벌 중심의 현행법에 마약 중독의 치료 재활 예산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마약과의 전쟁은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인데 지금 같은 일회성 예산 증액으론 부족하다. 이를 바탕으로 장기 로드맵을 설정해 전담 병원 인프라 구축, 마약 중독 전담 의사와 상담사 등 재활 관련 인력의 양성을 긴 호흡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

마약 사범에 대한 국민 여론은 엄벌주의가 대다수다. 치료에 대해서도 왜 세금을 ‘약쟁이’들에게 쓰느냐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마약 중독자를 범죄자보다는 환자로 여겨 치료 대상으로 포용해야 더 큰 범죄를 막을 수 있게 된다. 정부가 당장 성과를 내려는 조급증을 버리고 이들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차근차근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