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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도 와버린 마약 문제, 게임 속에선? 게임에 투영된 북남미 마약 확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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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7-20 13:37 조회1,0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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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김밥, 마약 핫도그, 마약 베개…

 

일상에 스며 있는 표현들입니다. 사뭇 위험할 수도 있는 단어가 그간 경계심 없이 사용되어 온 배경에는, 마약 문제를 먼 나라 이야기로만 여기던 한국 사회의 집단적 무방비가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얘기가 많이 다릅니다. 10대 청소년들의 마약 복용 실태가 걸핏하면 뉴스에 보도되는 가운데, 아직 학교 앞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마약 떡볶이' 간판들은 전에 없던 위화감을 심어 줍니다. 마약 문제 전반의 인식 제고와 함께, 단어 사용의 적합성도 한 번은 따져볼 때가 된 듯합니다.

 

'마약 ○○'이 아닌 진짜 마약이 일상화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이렇듯 우리 곁에 바짝 다가오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오래 전부터 그러한 과정을 거쳐온 미국 등의 상황은 사뭇 심각합니다. 우리가 그 나라의 사정을 제대로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 따른 상황은 당시를 다룬 게임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마약 확산 문제가 어떤 식으로 작품에 투영되어 있을까요? 지금도 심각한 마약 문제에 시달리는 아메리카 대륙 배경 게임들을, 시대 흐름에 따라 몇 개 살펴봤습니다. 

#  <LA 느와르> - 1900년대 시작된 미국의 몰핀 단속

 

프랑스어로 ‘검은색’이라는 의미의 ‘누아르’는 소설, 영화 등의 창작 갈래 중 하나입니다. 1940~1950년대 미국에서는 암울한 시대상을 담은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범죄/수사 작품이 유행했는데, 그중 특히 2차대전 직후부터 나온 해당 계열의 영화들을 ‘필름 누아르’로 부릅니다. 

 

<LA 느와르>는 필름 누아르 스타일을 후대에 재현한 ‘네오 누아르’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외래어표기법상 Noir는 ‘누아르’로 쓰지만, 게임 정식 번역은 ‘느와르’로 정해졌습니다) 현실적인 인물 표정, ‘심문’ 시스템, 탄탄한 시대극 연출로 호평받았습니다.

 

배경은 1947년의 로스앤젤레스(LA)입니다. 미 해병대 출신의 참전용사인 주인공 ‘콜 펠프스’는 전후 본국으로 돌아와 교통순경이 됩니다. 그러던 중 특정 사건에서의 활약상을 인정받으면서 승진과 함께 부서를 몇 차례 옮기는데, 강력반을 거쳐 세 번째로 배속되는 부서가 바로 마약반입니다.

 

마약반 미션에서 주로 다루는 약물은 아편류 마약인 ‘모르핀’인데, 여기에는 실제 역사적 맥락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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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의 모르핀 사용이 시작된 시기는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80년대 중반까지 모르핀은 일종의 만병통치약으로 대중에 판매됐습니다. 감기약에 함유되었던 것은 물론, 어린이용 의약품에도 들어갔습니다.

 

미국에서 모르핀을 포함한 아편류 마약의 사용 통제가 시작된 것은 1900년대부터입니다. 1906년에 아편류 포함 약물에 해당 성분을 표기해야 하는 법안이 통과됐으며, 1909년에는 중국인 이민자들을 표적으로 아편 수입과 흡연을 금지했고, 1914년에는 아편류 전반의 생산, 수입, 유통을 통제하고 세금을 물리는 규제가 시작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모르핀은 강력한 진통제로서, 의학적 쓰임새도 큽니다. 이 때문에 미군 역시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부상 치료용 구급 키트에 모르핀을 포함했는데, 이는 의무병이 부상자에게 도착하기 전, 병사가 스스로 고통을 경감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됐습니다.

 

하지만 대량 생산된 구급 키트는 전쟁 이후 미국 내 모르핀 관련 범죄의 원인이 됐습니다. 전쟁 이후 일부 미국인들은 모르핀 주사를 얻기 위해 잉여 군용 구급 키트를 구매하거나 심지어 훔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LA 느와르>에서도 군용 잉여 모르핀을 몰래 판매한 해병 출신 병사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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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병사들에게 지급했던 구급 키트 속 모르핀 (출처: 영문 위키피디아)

 

 

# <맥스 페인> - 전쟁을 기점으로 확산한 암페타민

 

<맥스 페인> 시리즈는 <앨런 웨이크>, <컨트롤> 등 액션 어드벤처 장르 게임으로 명성이 높은 핀란드 개발사 레메디 엔터테인먼트의 고전 슈팅 게임입니다.

 

<맥스 페인>의 여러 인기 요인 중 하나는 비정하고 암울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맥스의 삶은 그의 이름처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 원흉이 되는 것이 바로 작중의 신종 마약 ‘발키리’입니다.

 

뉴욕시경의 형사였던 맥스는 어느 날 발키리 중독자들에 의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무참히 잃습니다. 맥스는 발키리를 확산시킨 범인을 찾고자 마약단속반(DEA)으로 자리를 옮기지만, 수사 중 살인 누명을 쓰면서 큰 곤경에 처합니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조사를 계속한 끝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스포일러) 거대한 진실이란 바로 발키리의 최초 발원지입니다. 설정상 발키리는 미국 정부가 병사들의 전투 효율을 키우기 위해 비밀리 개발하던 신종 마약입니다. 예산 지원이 끊기면서 프로젝트는 중단되지만, 한 제약회사의 고위 인사가 이를 이어받아 마약을 완성시키고, 뉴욕에 퍼뜨리게 됩니다.

 

발키리의 전반적 설정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각군에서 나타났던 암페타민류 마약의 사용과 전후 전세계적 확산 문제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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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의 신종 마약 '발키리'는 주인공 맥스가 겪는 비극의 시작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암페타민은 발키리와 마찬가지로 전투력 증진을 목적으로 추축군과 연합군 양측 모두의 병사들에게 대대적으로 지급됐습니다. 일본군은 카미카제 파일럿에게 암페타민을 나눠줬고, 미군도 특히 야간 장거리 비행에 나서야 하는 공군 파일럿들에게 벤제드린(Benzedrine)을 지급했던 사례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군수물자’가 그랬던 것처럼 암페타민 역시 대량으로 생산되었습니다. 일례로 영국 왕립 해군만 하더라도 1942년에서 1943년의 2년 간 2,800만 정의 암페타민 제조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넘쳐나는 암페타민 잉여분은 결국 전후에 각국 사회에 퍼지게 됩니다.

 

그런데 미국에선 앞선 모르핀의 사례와 비교해 전쟁 후 한동안 암페타민 관련 규제가 비교적 느슨한 편이었습니다. 이는 전쟁 중의 대규모 사용, 그리고 전후 제약 회사들의 경쟁적 광고 때문에 암페타민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낮았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그 결과 1960년대까지 암페타민은 미국에서 졸음 방지, 체중 감량, 운동능력 증진 등 다양한 목적에 맞춰 합법, 비합법으로 널리 사용됐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1962년까지 80톤의 암페타민이 생산되었고, 1967년까지 3,100만 건의 메스암페타민 처방이 이뤄졌습니다.

 

관련하여 미국 내에서 본격적 규제가 시작된 것은 1970년대부터입니다. 암페타민은 규제 대상 약물로 규정되었고, 그 위해성을 알리는 공공 캠페인도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규제에도 남용을 막을 수 없었으며 문제는 지금까지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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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군이 병사들에 지급했던 암페타민 Pervitin(출처: 영문 위키피디아)

 

 

# <톰 클랜시 고스트 리콘: 와일드랜드> - 1970년대부터 지속되는 마약 카르텔

 

<톰 클랜시 고스트 리콘: 와일드랜드>(이하 ‘와일드랜드’)는 유서 깊은 남미발 마약 문제를 테마로 한 군사 스릴러 장르의 유비소프트 오픈 월드 게임입니다.

 

미국에 마약을 공급하는 남미의 마약 카르텔이 최초로 문제가 된 시기는 1970년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를 통해서도 잘 알려진 콜롬비아의 ‘메데인 카르텔’이 대표적 예시입니다. 인접한 미국에 마약을 공급하면서 성장한 이들 카르텔은 현지 정부 인사를 암살하는 등 악명을 키웠고, 이는 추후 미국 정부와 충돌하는 계기가 됩니다.

 

<와일드랜드>의 경우 멕시코에서 조직돼 볼리비아로 거점을 옮긴 가상의 마약조직 ‘산타블랑카 카르텔’이 등장합니다. 산타블랑카 카르텔이 미국의 마약단속국(DEA) 요원을 살해하자, 이들을 와해시키기 위해 미국 정부가 특수부대 ‘고스트’를 볼리비아에 투입하는 이야기입니다.

 

카르텔이 미국 수사관을 살해하고, 미군이 타국 국경 안에서 단속 작전을 펼치는 상황은 모두 실제 역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1985년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마약 카르텔이 DEA 요원을 납치, 살해하자, 미국은 멕시코 내에서 검거 작전을 펴 카르텔 조직원들을 사살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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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코스: 멕시코> 시즌1은 1980년대 벌어진 DEA 요원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한다.

 

이처럼 미국은 자국 내 마약 확산 방지를 목표로 1980년대부터 남미 국가들과 ‘사법 공조’를 벌이고 있습니다. 내정간섭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지만, 부패가 심각한 남미의 공권력에 마약 단속을 온전히 맡겨둘 수 없다는 이유로 지속 중입니다. 특히 위 언급된 요원 암살 사건이 계기가 되어 DEA는 자체 특수부대 등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DEA의 자국 내 활동을 금지하는 남미 국가들도 있는데, <와일드랜드>의 주 무대인 볼리비아의 역시 DEA를 추방했던 나라입니다. 2005년 당선된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전통 작물이자 코카인 원료인 코카 재배 양성화를 시도하면서 미국과 마찰을 빚어 국교 단절을 선언한 뒤 DEA도 쫓아냈기 때문입니다. 이후 국교는 정상화됐지만 모랄레스는 DEA 복귀를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남미에 이렇듯 거대 마약 조직들이 준동하게 된 최초의 원인으로도 미국이 지적됩니다. 1970년대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미국이 멕시코 내 마약 생산지에 타격을 입히면서, 되려 마약 생산이 남미 전역으로 확장됐다는 시각입니다.

 

1975년 미국은 멕시코 법무부와 함께 현지 마약 재배지에 전격적 고엽제 살포 작전을 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공조’였지만, 실상은 미국의 대규모 장비, 재정, 인력 지원으로 벌어진 미군 주도의 작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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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랜드>에서 플레이어는 군사 등급 무기로 무장한 카르텔과 전투를 벌인다.

 

이는 멕시코의 마약 재배지를 문자 그대로 '고사'시켜 생산량을 현저히 낮추는 결과를 낳습니다. 하지만 공급 단절로 마약 문제를 근절하겠다는 미 정부의 계획과는 달리, 미국 내의 마약 수요는 (당연하게도) 줄어들지 않았고, 마약 산업이 멕시코 국경을 넘어 콜롬비아 등 남미의 여타 국가로 확산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또한 마약 생산량이 줄어 가격이 폭등하면서, 마약 카르텔들의 비대화로 이어졌다는 해석도 뒤따릅니다. 이를 통해 카르텔들은 조직원 수를 늘리고 무장을 강화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강력하게 무장한 카르텔은 게임에서도 표현됩니다. <와일드랜드>에서 유저는 헬기, 돌격소총, 폭발물 등군사급 무기를 다양하게 갖춘 카르텔과 전투를 벌여야 합니다. 이 또한 현대 카르텔의 모습을 많은 부분 반영한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올해 1월에는 멕시코 도심에서 카르텔과 멕시코군 사이에 벌어진 흡사 전쟁 같은 ‘마약왕 검거 작전’이 전 세계적으로 보도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