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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숨은 빛>알코올중독자가 ‘재활도우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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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jinjuacc 작성일04-03-24 17:59 조회18,635회 댓글0건본문
‘까리따스 알코올상담센터’ 심춘섭씨
이진우기자 jwlee@munhwa.com
술의 노예가 돼 몸과 마음, 인생이 피폐해지는 알코올의존증(중독). 알코올중독은 의료계에서 완치율이 1%도 안된다고 할 정도로 치유가 힘든 ‘질병’이다. 한번 중독되면 회복되더라도 평생에 걸쳐 경계를 하지 않으면 약한 틈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 재활의지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서울 방배동 까리따스 알코올상담센터 직원으로 채용돼 지난 1월1일부터 일하고 있는 심춘섭(37)씨. 그는 10년 넘게 알코올중독에 시달렸지만 이제 예전의 자신처럼 알코올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재활을 돕고 있다.
전문적인 치료지식이나 행정경험이 없는 그가 정식 직원으로 채용된 것은 알코올중독의 수렁을 빠져나온 경험자라는 것과 치료를 마친후 3년여 동안 일하는 틈틈이(그는 경력 18년의 능숙한 도배사다) 차량운전에서 알코올의존자(중독자) 상담 보조까지 알코올상담센터의 일을 도운 성실함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센터에서 받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받은 만큼 돌려주지는 못하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밑거름이 돼 이곳 일을 돕겠다고 스스로 세운 뜻을 실천하는 것뿐입니다.”
그가 이곳에서 하는 일은 차량운행, 행정문서 전달 등에서 알코올중독자 상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일은 알코올중독자 치료 프로그램에 보조자로 참여하는 것이다.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과는 매일 각자의 생활을 성찰하는 ‘모닝 미팅’과 명상치료시간에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재활의지를 북돋워준다.
“알코올중독으로 상담하거나 치료받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에게 저같은 경험자의 조언이 큰 힘을 주는 것 같습니다. 치료받다가 좌절하더라도 힘들어하는 점을 이해하고 이끌어주니 편안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가 큰 몫을 하는 프로그램은 알코올중독자 단주훈련. 단주결심을 한 참가자와 숙식을 함께하며 때로는 방에서 문을 잠그고 대소변을 받아내며 버티게 하기도 하고, 차 속에서 밤을 새우며 그의 집 앞에서 대기하기도 한다. 지난 2003년 6월부터 치료를 시작했던 김정표(28·가명)씨의 경우 야밤에 “단주가 너무 힘들어 자살하겠다”고 전화하고 약을 복용하자 달려가 응급실로 옮기기도 했다. 김씨는 현재 단주를 6개월째 실행중이다.
“내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시행착오를 겪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땐 스스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것이 달려가 도움을 줄 때보다 훨씬 힘듭니다.”
그가 알코올의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온지 4년째. 그가 알코올중독 증세를 느끼고 병원을 처음 찾은 것은 10년전인 28세때였다. 이미 몸이 마비되고 반점이 생긴 데다 음식을 못먹고 환시, 환청 등 금단현상을 겪고 있었다.
“6세때 돌아가신 아버지도 알코올중독자였습니다. 바로 위 형님 두분도 알코올중독자여서 괴로워하며 보살피는 어머니를 보며 자랐어요. 가족들과의 관계가 싫었고, 의지가 되지 못하는 형들로 인한 외로움을 푸느라 마시던 술에 절어 20대 중반에 나도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왔으나 다시 술을 마시게 돼 30세때는 정신과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정신과 병원에 입원한 나를 돌아다보니 충격적이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형들과 내 모습이 똑같았기 때문이었어요.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다짐하고 마음을 다잡아 병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작심삼일 , 다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자신이 너무나 혐오스러웠어요.”
지난 2000년 봄 자포자기해 술이나 실컷 마시고 죽기로 결심하고 누나를 찾아갔다. 도배일을 함께 하던 누나의 간곡한 부탁으로 지금 일하고 있는 까리따스 알코올상담센터를 찾게 됐다. 그리고 센터 소장인 박정숙 수녀를 만났다.
“수녀님은 나를 다독거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직면하게 했죠. 내 아픈 상처를 후벼 파내 스스로 문제를 깨닫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세심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퍼붓고 계셨어요. 나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이렇게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희망이 보였습니다. 수녀님과 함께 그동안 눈물로 나를 지켜봐주신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지며 내가 살아있어야 할 존재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후 그는 두가지 원칙을 세웠다. 하나는 술 안마시기, 또 하나는 술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후 지금까지 3년 넘게 센터일을 도우며 뜻을 실천하고 있다. 지금도 그는 명상과 일기쓰기를 하며 자기성찰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그의 재활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박정숙 수녀는 남들을 알코올의 수렁에서 건지는 일에 그만큼 땀을 쏟는 사람은 드물다고 칭찬한다.
“심춘섭씨는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난 후에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성실하게 센터일을 도왔어요. 대학 교육을 받은 전공자도 많지만 그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한 것도 그의 성실함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가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재활의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진우기자 jwlee@munhwa.co.kr
이진우기자 jwlee@munhwa.com
술의 노예가 돼 몸과 마음, 인생이 피폐해지는 알코올의존증(중독). 알코올중독은 의료계에서 완치율이 1%도 안된다고 할 정도로 치유가 힘든 ‘질병’이다. 한번 중독되면 회복되더라도 평생에 걸쳐 경계를 하지 않으면 약한 틈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 재활의지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서울 방배동 까리따스 알코올상담센터 직원으로 채용돼 지난 1월1일부터 일하고 있는 심춘섭(37)씨. 그는 10년 넘게 알코올중독에 시달렸지만 이제 예전의 자신처럼 알코올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재활을 돕고 있다.
전문적인 치료지식이나 행정경험이 없는 그가 정식 직원으로 채용된 것은 알코올중독의 수렁을 빠져나온 경험자라는 것과 치료를 마친후 3년여 동안 일하는 틈틈이(그는 경력 18년의 능숙한 도배사다) 차량운전에서 알코올의존자(중독자) 상담 보조까지 알코올상담센터의 일을 도운 성실함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센터에서 받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받은 만큼 돌려주지는 못하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밑거름이 돼 이곳 일을 돕겠다고 스스로 세운 뜻을 실천하는 것뿐입니다.”
그가 이곳에서 하는 일은 차량운행, 행정문서 전달 등에서 알코올중독자 상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일은 알코올중독자 치료 프로그램에 보조자로 참여하는 것이다.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과는 매일 각자의 생활을 성찰하는 ‘모닝 미팅’과 명상치료시간에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재활의지를 북돋워준다.
“알코올중독으로 상담하거나 치료받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에게 저같은 경험자의 조언이 큰 힘을 주는 것 같습니다. 치료받다가 좌절하더라도 힘들어하는 점을 이해하고 이끌어주니 편안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가 큰 몫을 하는 프로그램은 알코올중독자 단주훈련. 단주결심을 한 참가자와 숙식을 함께하며 때로는 방에서 문을 잠그고 대소변을 받아내며 버티게 하기도 하고, 차 속에서 밤을 새우며 그의 집 앞에서 대기하기도 한다. 지난 2003년 6월부터 치료를 시작했던 김정표(28·가명)씨의 경우 야밤에 “단주가 너무 힘들어 자살하겠다”고 전화하고 약을 복용하자 달려가 응급실로 옮기기도 했다. 김씨는 현재 단주를 6개월째 실행중이다.
“내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시행착오를 겪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땐 스스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것이 달려가 도움을 줄 때보다 훨씬 힘듭니다.”
그가 알코올의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온지 4년째. 그가 알코올중독 증세를 느끼고 병원을 처음 찾은 것은 10년전인 28세때였다. 이미 몸이 마비되고 반점이 생긴 데다 음식을 못먹고 환시, 환청 등 금단현상을 겪고 있었다.
“6세때 돌아가신 아버지도 알코올중독자였습니다. 바로 위 형님 두분도 알코올중독자여서 괴로워하며 보살피는 어머니를 보며 자랐어요. 가족들과의 관계가 싫었고, 의지가 되지 못하는 형들로 인한 외로움을 푸느라 마시던 술에 절어 20대 중반에 나도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왔으나 다시 술을 마시게 돼 30세때는 정신과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정신과 병원에 입원한 나를 돌아다보니 충격적이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형들과 내 모습이 똑같았기 때문이었어요.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다짐하고 마음을 다잡아 병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작심삼일 , 다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자신이 너무나 혐오스러웠어요.”
지난 2000년 봄 자포자기해 술이나 실컷 마시고 죽기로 결심하고 누나를 찾아갔다. 도배일을 함께 하던 누나의 간곡한 부탁으로 지금 일하고 있는 까리따스 알코올상담센터를 찾게 됐다. 그리고 센터 소장인 박정숙 수녀를 만났다.
“수녀님은 나를 다독거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직면하게 했죠. 내 아픈 상처를 후벼 파내 스스로 문제를 깨닫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세심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퍼붓고 계셨어요. 나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이렇게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희망이 보였습니다. 수녀님과 함께 그동안 눈물로 나를 지켜봐주신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지며 내가 살아있어야 할 존재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후 그는 두가지 원칙을 세웠다. 하나는 술 안마시기, 또 하나는 술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후 지금까지 3년 넘게 센터일을 도우며 뜻을 실천하고 있다. 지금도 그는 명상과 일기쓰기를 하며 자기성찰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그의 재활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박정숙 수녀는 남들을 알코올의 수렁에서 건지는 일에 그만큼 땀을 쏟는 사람은 드물다고 칭찬한다.
“심춘섭씨는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난 후에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성실하게 센터일을 도왔어요. 대학 교육을 받은 전공자도 많지만 그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한 것도 그의 성실함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가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재활의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진우기자 jwlee@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