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로그인 회원가입
소식지
관련사이트

home

주요기사

왜? 막걸리가 호황인가 ?

페이지 정보

작성자 술 딴 지 작성일04-11-19 22:27 조회19,036회 댓글0건

본문


왜? 막걸리가 호황인가 ?

30년전 쯤 이던가? 동네 골목길 어귀 전봇대마다 붙어 있던 광고문구 하나가 있었다. ‘막걸리 반되면 밥 한그릇’. 양조공장에서 붙인 듯한 16절지 크기의 백지 위에 아무런 배경그림 없이 커다란 글씨만 새겨넣은 추억속의 광고문구다. 영양많은 막걸리 반되만 마시면 한끼밥은 굶어도 충분하다는 뜻이리라. 보리밥조차 맘껏 먹지 못했던 배고픈 시절, 구수한 누룩냄새 배어 나오는 막걸리를 홍보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문구가 있었을까?
이제 중동지역 건설특수와 중공업화의 성공, 첨단 반도체 제품의 수출호황 등에 힙입어 배고픔은 기억 저편에 섰다. 덩달아 막걸리도 잊혀져 갔고, 대신 위스키와 맥주가 주인인 양 테이블마다 홀마다 넘쳐났다. 수십가지도 넘는 폭탄주 제조기술(?)이 등장했고 흥청망청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다시 ‘IMF 때보다 더하다’는 지독한 불경기가 엄습했다.

소주보다 배가 부르다?

‘소주보다 배가 부른 막걸리가 더 잘 팔린다’는 지금, 김치 한 조각이면 한 사발을 들이켤 수 있는 막걸리가 기름진 안주를 필요로 하는 소주보다 각광을 받고 있단다. 30여년전 배고픔을 이기려고 막걸리를 들이켤 때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서민들의 빈 호주머니는 막걸리의 향수를 자극하고도 남는다. ‘술이란 입으로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마신다’는 술에 담긴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하는 시절이다.
막걸리 제조협회의 최근 통계는 맥주와 양주, 소주 등에 밀려 하락세가 지속됐던 막걸리 판매량이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상승세로 반전한 뒤 최근 더욱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막걸리는 지난 1~9월 서울 및 수도권 시장에서 5868만여 병(750㎖ 기준)이 팔려 지난해에 비해 20%나 판매량이 늘어났다. 같은 기간 위스키 판매량이 무려 25% 정도 감소된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서민의 술’로 통하는 막걸리가 경기 침체기엔 오히려 `나홀로 호황세’를 구가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1970년대 초만 해도 막걸리 점유율은 전체 주류시장의 70%에 달했다. 하지만 현재는 1%도 안 되는 수준이어서 전국적인 통계 집계조차 어렵다.
애환을 달래려고 마시는 술이건, 취하려고 마시는 술이건 막걸리나 소주나 위스키는 술이란 점에서 똑같다. 다만 입맛과 비용의 차이일 뿐이다. 취하고 싶을 때 독주를 마실수록 빨리 취한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알코올 도수가 40도인 위스키는 21~25도인 소주보다 빨리 취하고, 소주는 4~5도인 맥주보다 빨리 취한다. 양주와 소주, 맥주를 같은 양으로 마신다면 독주일수록 빨리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잔으로 따지면 얘기는 달라진다. 위스키는 위스키잔으로, 소주는 소주잔으로, 맥주는 맥주잔으로 각각 같은 수의 잔을 마시면 취하기는 마찬가지다. 실제로 한 잔당 알코올 양은 위스키의 경우 35㎖의 40%인 14㎖이고 소주는 60㎖의 21~25%인 12~15㎖, 맥주는 250㎖의 4~5%인 10~12㎖ 가량으로 비슷하다. 이는 술마다 적당한 알코올이 잔에 담길 수 있도록 주종에 맞는 잔이 고안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알코올 함량이 맥주와 비슷한 막걸리 한사발도 예외는 아니다.

서민애환의 깊이 살펴라

본래 술은 인간보다 원숭이나 동물들이 먼저 마시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있다. 숲속 과일나무 밑 바위틈이나 웅덩이에 무르익은 과일이 떨어져 쌓이고, 문드러져 과즙이 고이고, 효모에 의한 발효가 일어나 술이 빚어지게 됐다는 상당히 근거 있는 설이다. 가끔 아프리카에서 코끼리나 멧돼지 등이 자연 발생적으로 고인 술을 먹고 휘청거리고, 뒹구는 현상이 그것이란다. 영리한 원숭이들은 우연이 마신 술맛에 반하게 됐고, 그 맛을 잊지 못해 과일을 따모아 바위틈에 술을 담그기까지 한다는 게 설의 뒷받침이다.
누가 먼저 술을 마셨다는 건 중요치 않다. 마음으로도 술을 마시듯, 어떤 술을 마시는가도 중요치 않다. 어릴적, 아버지의 막걸리 주전자 심부름을 해 본 사람이면 술이 일상에 필요한 존재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술이 일상과 뗄 수 없는 존재라면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술 판매량으로 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위정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배고팠던 시절에 잘 팔렸던 막걸리가 왜 지금 다시 호황을 누리는가’를 깊이 되새겨 보라고….


박용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