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어제는 마약중독자, 오늘은 회복상담사…“희망됐으면” [약도 없는 마약⑦]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12-19 16:34 조회3,044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마약엔 치료 ‘약’이 없다. 마약을 끊어야만 호전된다. 마약 중독은 치료가 필요한 뇌 질환이기 때문에 혼자 힘으론 재발을 막기 어렵다. 국가 차원의 ‘약’도 없다. 치료·재활이 유일한 방법이지만, 국내 인프라는 열악하다. 해마다 마약 중독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 마약 치료 실태를 짚고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살펴본다.
한국중독당사자지원센터의 중독당사자활동가 워크숍 모습. 한국중독당사자지원센터
“마약중독자 마음을 잘 알아요. 제가 마약을 해봤으니까요.”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마퇴본부) 영남권중독재활센터에서 회복자상담사 양성과정을 이수 중인 정윤수(가명·53)씨가 이같이 말했다. 정씨는 지난 2018년 처음 필로폰을 접한 후 3년 이상 마약 중독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교도소를 드나든 끝에 2021년 석방된 정씨는 2년 넘게 회복 상태를 유지 중이다.
정씨가 단약 상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건 회복자상담사가 되겠다는 꿈이었다. 마퇴본부에서 운영하는 회복자상담사 양성과정은 회복자 상담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갈망 및 고위험상황 다루기’, ‘회복의 여정’ 등으로 구성됐다. 기본교육 30시간, 심화교육 40시간, 보수교육 10시간을 받는다.
상담사가 되기 위해 정씨는 삶의 많은 것을 바꿨다. 고등학교 졸업자여야 한다는 자격조건에 맞추기 위해 고등학교에 입학해 수업을 듣는다. 대학교도 진학할 예정이다. 저녁 시간대엔 마약이 생각날까 두려워, 오후 6~10시 대패삼겹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도 한다. 하루를 바쁘게 쪼개 쓰는 것 역시 회복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
정씨와 같이 회복자상담사 교육을 받고 있는 김재현(48)씨도 5년 넘게 단약에 성공했다. 20년간 감옥을 10번 드나들 정도로 마약 중독이 심했다. 그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갈망을 이겨냈다. 김씨는 “단약은 로또 맞은 것과 같다고 할 정도로 힘든 과정”이라면서 “회복자상담사 공부를 하면서 마약 중독에 대한 이론적 이해도가 높아졌다. 중독에서 저를 방어할 수 있는 기술이 더 많이 생겼다”며 웃었다.
범법 정신질환자를 격리·수용하는 기관인 국립법무병원의 조성남 원장은 “마약 중독 회복자가 상담을 하면 환자들의 눈빛부터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어 “한 사람이 중독되면 피라미드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중독이 퍼진다. 반대로 중독자를 잘 회복시키면, 그가 옆에 있는 중독자에게 영향을 끼친다”면서 “중독자를 회복자로, 회복자를 치료자로 양성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치료·재활 요소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한 중독당사자가 회복경험담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중독당사자지원센터
미국선 회복자상담사 프로그램 안착…재범률 감소
미국에선 이미 중독자 출신이 상담자 교육과정을 거쳐 자신이 수감됐던 교도소에서 상담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활성화돼 있다. 지난해 발간된 아시아교정포럼 교정담론 제16권 제1호 ‘외국의 마약류중독 수형자를 위한 교정시설 내 치료 프로그램: 미국, 캐나다, 호주를 중심으로’(저자 박현나) 논문에 따르면 미국은 연방정부 및 주정부가 교정시설 내 치료 프로그램 운영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교정시설 내 마약류중독 수형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위한 치료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 정책 중 하나가 ‘치료공동체(Therapeutic Community, TC)’다. 교정시설 내 마약류중독자들이 독립된 공간에서 공동체를 형성해 치료하는 프로그램이다. 마약 중독에서 회복된 기존의 치료공동체 구성원이 치료의 주체로 참여, 마약류중독 극복 경험을 나누며 새로운 구성원에게 단약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는 점이 특징이다.
치료 효과를 입증한 연구 결과도 있다. 2013년 발표된 ‘교도소를 이용한 약물치료에 대한 다각적인 평가: 4년간의 추적 조사 결과(A Multisite Evaluation of Prison- Based Drug Treatment: Four-Year Follow-up Results)’ 연구 논문에 따르면 치료공동체(TC)는 재복역률 감소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한 수형자들의 출소 후 4년 이내 재복역률은 비교 집단 수형자들보다 42% 낮았다.
한국도 중독회복당사자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중독당사자지원센터는 올해부터 중독당사자활동가 양성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약물을 비롯해 알코올, 도박 중독회복당사자들을 활동가로 양성해 자신의 회복 사례를 공유하는 활동을 한다. 1기 양성과정 교육생은 모두 알코올중독당사자였지만, 내년부턴 약물과 도박 회복당사자 등 다양하게 참여할 예정이다.
한국중독당사자지원센터 관계자는 “중독당사자가 가지고 있는 중독에서 회복된 경험은 고유한 것”이라며 “중독은 질환 특성상 평생 관리를 잘해야 재발하지 않고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활동가로서 자신을 잘 관리하고 책임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에 재발의 위험에서 조금 더 안전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